어디서 스크랩 한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하고 비슷해서 적어놨던 글이다. 2003.06.09 16:23 미니홈피에 있던 글로 계속 창작되며 업그레이드 되는 꿈을 꾸는게 나만이 아니란 게 재미있다^^ 난 처음에 꿈에서 나는 방법을 몰랐는데 점점 학습하여 이제는 꿈에서 너무 잘 난다. ㅋㅋ
몽유기(夢遊記)
글/김윤영(소설가) yoon2828@hitel.net
그들을 만난 것은 취리히로 가는 야간열차 안에서였다.
남녀 두 쌍의 네 명의 인도 젊은이들은 이등석 6인실 쿠셋의 2,3층을 점령하고 밤새도록 카드 게임을 하며 자기들끼리 떠들었다. 내 자리는 맨 아래칸이었고 내 맞은편의 프랑스 여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귀마개를 하고는 이내 잠들어버렸다. 그 인도인들 중 여인들은 치렁치렁한 편자비를 걸치고 야릇한 분냄새인지 향냄새를 풍겼다. 여행객들의 찌든 땀냄새엔 익숙해져있던 것과 달리 그 냄새는 너무 생소해서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혼자 여행을 떠난 지 수십 일이 지났지만 그 때만큼 밤잠자기가 괴로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즈음, 나는 하필 <춤추는 무뚜>라는 인도영화를 보았었다. 바로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날 밤 내 머리 위에서 계속 떠들고 놀던 네 명의 인도인들은 바로 내 꿈속에 등장했다. 줄거리는 빈약했지만 호화찬란한 춤과 노래의 버라이어티쇼였던 그 영화 그대로에다 주연만 바뀐 채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엄청 길어지기까지 했다. 그 배꼽춤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그 요란법적한 노래들, 어쩌면 그들은 밤에 진짜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들은 노래 때문에 잠을 못 이뤘다는 건 도대체 말이 안되니까 말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벌써 다 일어나고 나만 남았기 때문에 나는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사실 꿈에 대해서라면 나는 조금 일가견이 있다. 잠이 워낙 많은데다가 잤다하면 바로 꿈을 꾸기 시작하고 꾸는 꿈의 질과 양에 있어서도 그 데이터베이스가 방대하다고 자부한다. 간만에 꾼 꿈의 해몽이 궁금해서 책이나 해몽 사이트를 뒤져보다가 답이 안나올 때의 그 답답함이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꿈풀이 내용들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년간 내 경험에 의한 몇 가지 꿈의 법칙을 소개할까 한다. (이것은 절대로 일반화가 아니다. 내 경험의 소산일 뿐이다)
첫 번째, 흉몽은 길몽을 이긴다. 대개의 꿈들은 책에 나와 있듯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복합적이고 애매하다. 특히 흉몽과 길몽의 징후가 마구 섞였을 때도 꽤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꿈이 있었다. 집에 웬 갓난아기가 누워있고 그 아기의 얼굴을 무심코 콱 밟았는데(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꿈이니까) 아기 입에서 샛노란 똥이 뿌지직 새어나왔다. 그 꿈꾼 바로 다음날, 나는 조교 일을 잘못 처리해서 교수님께 엄청 혼났었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두 번째, 흑백꿈이 총천연색 꿈보다 신빙성이 높다. 이 대목에서 가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칼라라니… 꿈에도 색깔이 있나요?”(의외로 이런 사람들은 많다) 내 경우엔 채도와 명도를 기준으로 네 가지 칼라의 꿈을 꾼다. 지브리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처럼 화려한 선명도를 자랑하는 꿈이 그 첫 번째, 칼라는 있는데 화면에 비가 내리듯 선명치 못한 꿈들이 두 번째, 청색이나 회색의 한 가지 톤인 느와르풍의 꿈이 세 번째, 그리고 확실한 무채색의 흑백톤의 꿈이 그 네 번째이다. 칼라가 많아질수록 그것은 단순한 경험의 반영, 즉 쉽게 말해 개꿈일 확률이 높고 흑백꿈들은 미래의 암시 기능이 강하고 해몽이 확실히 된다.
세 번째, 동물이 나오면 대개 좋은 꿈이다. 복권을 사란 꿈이다. 꿈풀이 책을 보면 동물마다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나한테는 상관이 없다는 얘기기도 하다. 돼지는 말할 것도 없고, 코끼리, 호랑이, 곰, 용, 토끼, 개미, 곤충(특히 내가 자주 꾸는 꿈이다. 벌레라고도 한다), 오징어, 붕어, 등등. 딱 하나 뱀꿈만은 재미 본적이 없다. 지렁이, 구렁이, 이무기 등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동물 꿈을 꾸면 난 주변에 알리지 않고 가만히 있는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 꿈은 무조건 태몽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네 번째, 꿈은 계속 창작된다. 나는 꿈을 연속극처럼 이어서 자주 꾼다. 6부작 미니시리즈 정도의 꿈을 즐겨 꾸는 편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르겠다고 답하겠다. 그냥 꿈속에서 저번 줄거리가 저절로 기억이 나고 그 속의 주인공들과 벌써 친해져서 이러쿵저러쿵 액션을 주고받고 있다. 싫어도 빠져나올 수가 없다. 꿈이니까. 물론 단막극처럼 단발적인 꿈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깨고 나면 금새 잊어먹는다는 게 결정적인 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그럴 것이다. 얼마 전부턴 축구에 대한 꿈을 자주 꾸는데 그 땐 정말 정확히 기억 안나는 게 화가 날 정도로 아쉽다. 내가 잘 꾸는 꿈은 유럽의 올스타전 유형의 게임이다. (선수들의 명성과 상관없이 거의 뻥축구다) 팀 이름은 청군과 홍군이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이 골을 엄청 많이 넣는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아이마르, 베르켐프, 사비올라, 쁘띠, 인자기, 긱스, 네스타, 코코, 맨디에타, 다비즈, 송종국 등이 포지션과 상관없이 (아예 없다고 본다) 골잡이가 되어 버린다. 전형적인 수비수인 네스타가 헤트트릭을 기록한 적도 있는데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꿈이니깐 가능하다. 그래도 꾸고 나면 참 기분이 좋다. 정말 꿈에 그리던 광경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꿈이 계속 업그레이드 되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해몽의 필요성은 못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기억을 잘 못해서 그렇지, 꿈은 지난 것들을 조금씩 변조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즉 그 꿈들은 한번에 끝날 운명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완결이 안된 그 꿈들의 대부분을 우리는 개꿈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꿈은 안 꾸는 것이 제일 좋다. 사람은 매일 밤 꿈을 꾸지만 숙면일 땐 거의 기억이 안난다고 한다. 그만큼 푹 잔다는 건 건강하다는 증거다. 나는 잠을 늘 얕게 자기 때문에 기억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주 달콤한 꿈을 꾸면서도 푹 자는 경우가 아주아주 간혹 있다.
2년전, 배낭여행을 마치고 출국을 위해 파리로 가는 야간열차 안에서 바로 그랬었다. 그날따라 내가 탄 쿠셋의 구성원들은 유독 화기애애하고 인간적인 분위기였다. 밀라노에서 왔다는 잘생긴 미대생, 스톡홀롬 출신의 젊은 세일즈맨, 말이 많긴 했지만 방장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 40대 미국인 마이클, 그리고 대만에서 왔다는 발랄한 연인 커플, 그리고 나, 이렇게 여섯은 싸구려 와인과 맥주와 브리치즈를 나눠먹으며 놀았다. 특히 내가 남겨놓은 비장의 무기, 초코찰떡파이에 열광하며 부스러기 하나까지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다. 꽤 오래 노닥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대부분이 브로큰잉글리쉬라 정확히 뭘 들었는지도 서로 잘 모르는 듯 했지만 그건 상관이 없다) 그 날 밤 난 간만에 정말 푹 잤다. 깨기 싫을 정도로 달콤한 꿈을 꾼 것도 같은데 기억은 전혀 안난다. 날이 밝아와 그들과 인사를 하고 리옹역에 내렸을 때 간밤의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긴 여행을 혼자 끝냈다는 자체가 겁쟁이인 나에게는 꿈만 같았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 때 그 밤이나 그 여행의 기억들이 모두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한순간 꿨다가 잊혀지는 꿈처럼 세상엔 그런 꿈같은 일들이 간혹 있다.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는 가끔씩이지만 살아가는데 작은 위안을 얻는 것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속 시원히 풀이가 안되는 꿈들이 태반이긴 하지만 꿈이 없으면 우리의 긴 인생은 더 삭막할 것 같다. 꿈같은 일들이 언젠가는 이루어질지는 모른다는 기대, 그런 게 어쩌면 인생의 보너스 아닐까.
이글을 쓴 소설가 김윤영 씨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와 성균관대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에 「비밀의 화원」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2년 문예진흥원 창작기금을 받았다. 첫 소설집 『루이뷔똥』을 내놓은 후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